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아 전쟁 (문단 편집) === 카이사르의 갈리아 총독 임명 === 갈리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직을 열망하고 있었다. 그가 왜 하필 갈리아 총독을 원했던 것인가는 그가 저 위에 나온 갈리아의 정세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고, 따라서 전쟁의 가능성을 내다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는 그가 갈리아로 부임하자마자 우연히 저 헬베티족의 침략을 맞딱뜨린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그가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하는 과정과 헬베티족에 맞서는 전력을 편성하는 과정을 보면 그가 헬베티족의 움직임을 사전에 알았고, 집정관 시절에 준비에 들어갔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카이사르가 임명된 갈리아 총독은 단순한 총독직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의 통치하에 있는 갈리아 속주는 갈리아 키살피나와 갈리아 트란살피나로 나뉘어 통치되고 있었다. 따라서 속주가 2개이므로 2명의 총독이 가서 통치하는 것이 옳았으나 카이사르는 이 2개의 속주에다가 일리리아 속주[* [[발칸 반도]]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구 [[유고슬라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까지 3개의 속주를 한꺼번에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그는 5년이라는 상당히 긴 임기를 부여받았고 4개 군단의 지휘권인 [[임페리움]], 그리고 부사령관 선출권과 식민지 건설의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이러한 기존의 총독직을 능가하는 권한을 카이사르가 가진 것은 그가 다른 총독들과는 전혀 다른, 즉 갈리아 전쟁을 치르기 위한 역할을 애초부터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는 헬베티족과 만나면서 보름 사이에 속주에서 1개 군단을 뽑아냈고, 그들과 협상하면서 추가로 2개 군단을 뽑아 보충했다고 《갈리아 전기》에 기록해 두었는데 3개 군단이 새로 모집되고 합류하는 과정이 단 보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였다. 따라서 이는 카이사르가 이미 병력을 준비해두었고, 전투가 벌어지자 이들을 소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본다면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되기 이전부터 갈리아에서 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직을 원하고 있었고, 삼두정치의 일원인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협조를 얻어낸 카이사르는 원로원이 정한 기존의 산림과 가도의 직책을 갈리아 총독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것이 민회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되자 집정관 임기가 만료된 카이사르는 기원전 58년에 지체없이 갈리아 속주로 출발했다. 당시 헬베티족은 자신의 영토를 모두 불사르고, 갈리아를 향해 침략하는 중이었고, 따라서 카이사르는 속주에 주둔 중인 1개 군단과 함께 론 강을 사이에 두고, 헬베티족과 조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